노아스밀(Noah's Mill): 켄터키 작은 증류소의 숨겨진 보석, 버번 애호가를 위한 완벽 가이드

버번 위스키의 세계에서 '아는 사람만 아는' 위스키를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주저 없이 '노아스밀(Noah's Mill)'을 떠올립니다. 화려한 마케팅이나 거대한 자본 없이, 오직 맛과 개성으로 버번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름이죠. 57.15%라는 높은 도수가 주는 강렬함 속에 숨겨진 다채로운 풍미는 한번 맛보면 잊기 힘든 경험을 선사합니다. 오늘은 켄터키의 작은 증류소 윌렛(Willett)이 빚어낸 이 특별한 버번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 보겠습니다.

파란만장한 역사: 소싱 위스키에서 증류소의 자부심으로

노아스밀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미국 버번 역사입니다. 노아스밀을 생산하는 윌렛 증류소는 1936년에 설립되어 깊은 역사를 자랑하지만, 1980년대 버번 시장의 침체기를 이기지 못하고 증류를 중단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후 윌렛은 다른 증류소에서 원액을 구매해 자신들만의 레시피로 블렌딩하고 숙성시켜 판매하는 '비증류 생산자(NDP, Non-Distiller Producer)'로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노아스밀은 바로 이 시기인 1990년대 중반에 탄생했습니다. 처음에는 '15년 숙성'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달고 출시되어 버번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며 버번 시장이 다시 부흥하고 좋은 원액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15년 숙성 표기는 조용히 사라지고 숙성년수 미표기(NAS, No Age Statement) 제품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는 노아스밀 역사상 가장 큰 변화이자, 많은 올드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긴 사건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 노아스밀(Noah's Mill)이라는 이름은 증류소가 위치한 땅에 18세기에 방앗간(Mill)을 지었던 '노아(Noah)'라는 인물의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곡물을 빻아 만드는 위스키의 특성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이름이죠.

이후 2012년, 윌렛 증류소는 마침내 자체 증류를 재개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노아스밀은 오랜 소싱의 시대를 끝내고 100% 윌렛 증류소의 원액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노아스밀이 단순한 NDP 브랜드를 넘어, 윌렛 증류소의 철학과 기술력이 온전히 담긴 '작품'으로 거듭났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노아스밀의 특징: 숫자로 보는 프로필

노아스밀을 이해하기 위해선 몇 가지 핵심적인 특징을 알아야 합니다. 이 특징들이 모여 노아스밀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완성합니다.

특징 (Characteristic)내용 (Details)

분류 스몰 배치 켄터키 스트레이트 버번 위스키 (Small Batch Kentucky Straight Bourbon Whiskey)
증류소 윌렛 증류소 (Willett Distillery), 켄터키 바즈타운
도수 (ABV) 57.15% (114.3 Proof) - 배치마다 거의 변동 없는 고정 도수
숙성년수 (Age) NAS (No Age Statement). 과거 4~20년 숙성 원액을 블렌딩했다는 설이 있으며, 현재는 윌렛 자체 증류 원액을 사용합니다.
매시빌 (Mash Bill) 공식적으로 비공개. 하지만 윌렛의 전통적인 매시빌로 알려진 옥수수 72%, 호밀 13%, 맥아 보리 15%로 추정됩니다.
제조 방식 소수의 배럴(약 20개 내외)을 선별해 블렌딩하는 스몰 배치(Small Batch) 방식. 이로 인해 배치마다 미묘한 맛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라인업: 노아스밀과 그의 형제, 로완스 크릭

로완스 크릭

노아스밀은 단일 제품이지만, 윌렛 증류소의 포트폴리오 안에서 이해하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특히 '로완스 크릭(Rowan's Creek)'은 노아스밀의 '형제' 격인 제품으로 항상 함께 언급됩니다. 두 위스키는 비슷한 병 디자인과 정체성을 공유하지만, 명확한 차이점을 가집니다.

도수 (ABV) 57.15% (114.3 Proof) 50.05% (100.1 Proof)
맛의 특징 강렬하고 복합적이며, 견과류, 다크 프룻, 스파이스의 풍미가 지배적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화사하며, 캐러멜, 꿀, 꽃 향기가 특징
포지션 고도수의 강렬함을 즐기는 애호가를 위한 프리미엄 버번 균형감과 접근성을 중시하는 이들을 위한 데일리 버번

자료 출처: Willett Distillery Official Website

두 위스키를 함께 맛보며 캐릭터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은 윌렛 증류소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는 좋은 방법입니다.

테이스팅 노트: 강렬함 속에 피어나는 다채로운 향연

노아스밀 버번

노아스밀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그 맛입니다. 높은 도수에도 불구하고 알코올이 튀지 않으며, 풍부하고 복합적인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웁니다.

Nose (향)

  • 첫인상: 잘 볶은 호두와 아몬드 같은 고소한 견과류 향이 지배적입니다.
  • 시간이 지나면: 건포도, 자두와 같은 검붉은 과일의 달콤함과 함께 오래된 가죽, 시가 박스, 흙내음 같은 '펑키(funky)'한 향이 복합미를 더합니다.
  • 마지막: 캐러멜과 바닐라의 달콤함이 은은하게 깔리며 향의 균형을 잡아줍니다.

Palate (맛)

  • 질감: 입에 꽉 차는 듯한 벨벳처럼 부드럽고 크리미한 질감이 인상적입니다.
  • 주요 풍미: 흑설탕, 토피의 진한 달콤함이 먼저 느껴지고, 이어서 계피, 정향 같은 스파이스가 짜릿하게 터져 나옵니다.
  • 복합미: 구운 오크, 다크 초콜릿, 담뱃잎의 쌉쌀한 맛이 더해져 맛의 깊이를 더하며, '맛있다'는 감탄을 자아냅니다.

Finish (여운)

  • 길이: 매우 길고 따뜻한 여운이 이어집니다.
  • 마무리: 스파이시함이 먼저 목을 감싸고, 이후 달콤한 캐러멜과 고소한 견과류의 잔향이 오랫동안 입안에 머뭅니다. 기분 좋은 '켄터키 허그(Kentucky Hug)'를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가격과 소장 가치: 마셔야 할까, 모아야 할까?

노아스밀의 가격은 구매처에 따라 편차가 큰 편입니다. 미국 현지에서는 약 $60 내외로 구매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주세와 유통 비용이 더해져 10만원대 중후반에서 20만원대 초반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그 독특한 맛과 경험을 고려하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평이 많습니다.

소장 가치의 측면에서는 '과거의 보틀'이 더 주목받습니다. 특히 15년 숙성 표기가 있던 초창기 보틀은 컬렉터들 사이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됩니다. 또한 윌렛 자체 증류 원액으로 바뀌기 전의 '소싱 원액' 보틀 역시, 현재의 보틀과 맛을 비교하기 위해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현재 판매되는 보틀은 희귀성보다는 '마시기 좋은 프리미엄 버번'으로서의 가치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몰 배치 특성상 특정 배치가 뛰어난 평가를 받으면 해당 배치의 가치가 오르기도 합니다.

결론: 모든 버번 애호가가 거쳐야 할 관문

노아스밀은 단순히 '도수 높은 버번'이 아닙니다. 증류소의 파산과 부활, 소싱에서 자체 증류로의 전환이라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품고 있으며, 스몰 배치 방식으로 매번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위스키입니다. 강렬함과 부드러움, 달콤함과 스파이시함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복합적인 풍미는 버번의 매력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만약 당신이 버번의 세계를 더 깊이 탐험하고 싶다면, 노아스밀은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관문 중 하나입니다. 다음 위스키 잔은 이 매력적인 켄터키의 보석, 노아스밀로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마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