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 '스뱅'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선망의 대상이 된 위스키가 있습니다. 바로 스프링뱅크(Springbank)입니다. 특히 '스프링뱅크 12년 캐스크 스트렝스'는 매번 출시될 때마다 전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을 빚을 만큼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위스키가 왜 이토록 특별한 대접을 받는지, 그 역사와 제조 과정, 맛의 비밀을 파헤쳐 봅니다.
캠벨타운의 살아있는 전설, 스프링뱅크 증류소
스프링뱅크의 이야기는 스코틀랜드 킨타이어 반도의 작은 항구 도시 캠벨타운(Campbeltown)에서 시작됩니다. 한때 30개가 넘는 증류소가 밀집해 '세계 위스키의 수도'라 불렸던 이곳은 20세기 대공황과 금주법의 여파로 대부분의 증류소가 문을 닫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 격동의 시기 속에서 1828년 미첼(Mitchell) 가문이 설립한 스프링뱅크는 꿋꿋이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가족 경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 캠벨타운에 남은 단 3개의 증류소 중 하나이자,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 가족 경영 증류소라는 자부심은 스프링뱅크 위스키의 모든 것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장인정신이 빚어낸 특별함: 100% 수제 공정
스프링뱅크가 특별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전통 방식'에 대한 고집입니다. 보리를 발아시키는 플로어 몰팅(Floor Malting)부터 건조, 당화, 발효, 증류, 숙성, 병입까지 위스키 생산의 모든 과정을 100% 증류소 내에서 직접 수행하는 스코틀랜드 유일의 증류소입니다. 이는 생산 효율성보다는 품질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우선시하는 그들의 철학을 보여줍니다.
하나의 증류소, 세 가지 위스키
스프링뱅크 증류소는 한 곳에서 전혀 다른 개성을 지닌 세 종류의 싱글몰트 위스키를 생산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는 피트(Peat) 처리 수준과 증류 횟수를 달리하여 만들어집니다.
- 스프링뱅크 (Springbank): 가볍게 피트 처리(Lightly Peated)한 몰트를 사용하며, 2.5회 증류하여 복합적인 맛과 균형감을 자랑합니다. (생산량의 약 80%)
- 롱로우 (Longrow): 강하게 피트 처리(Heavily Peated)하고 2회 증류하여 스모키하고 강렬한 풍미를 냅니다. (생산량의 약 10%)
- 헤이즐번 (Hazelburn): 피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Unpeated) 3회 증류하여 부드럽고 섬세하며 과일 향이 풍부합니다. (생산량의 약 10%)
알쏭달쏭한 2.5회 증류의 비밀
스프링뱅크의 상징과도 같은 '2.5회 증류'는 매우 독특한 방식입니다. 일반적인 2회 증류(대부분의 스카치 위스키)와 3회 증류(아이리시 위스키 등)의 특징을 모두 얻기 위한 복잡한 공정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1차 증류액의 일부는 2회 증류하고, 나머지 일부는 3회 증류한 후 그 결과물을 다시 섞는 방식입니다. 이를 통해 2회 증류의 풍부한 바디감과 3회 증류의 부드러움을 동시에 구현하여 스프링뱅크만의 복합적인 캐릭터를 완성합니다.
스프링뱅크 12년 캐스크 스트렝스(CS) 깊이 보기
스프링뱅크 라인업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제품이 바로 '12년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 CS)'입니다. '캐스크 스트렝스'는 숙성을 마친 위스키 원액에 물을 섞어 도수를 낮추지 않고 그대로 병에 담았다는 의미로, 위스키 본연의 강렬하고 순수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배치마다 새로운 매력: 캐스크 조합
스프링뱅크 12년 CS의 가장 큰 특징은 매년 출시되는 배치(Batch)마다 캐스크 조합과 도수가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어떤 배치는 버번 캐스크와 셰리 캐스크를 섞고, 또 다른 배치는 럼이나 와인 캐스크를 추가하는 등 다채로운 실험을 합니다. 예를 들어, 2025년에 병입된 배치 27은 버번 캐스크 60%, 셰리 캐스크 35%, 럼 캐스크 5%의 조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위스키 애호가들은 새로운 배치가 나올 때마다 그 맛의 차이를 비교하며 즐기는 재미를 느낍니다.
맛과 향의 교향곡: 테이스팅 노트
"풍부하고 기름진 질감에 오렌지, 귤 같은 시트러스와 코코아의 힌트가 느껴진다. 달콤하고 매우 풍부하며, 스모키한 여운이 길게 이어진다." - Celler.com의 제품 리뷰
스프링뱅크 12년 CS의 맛은 한마디로 '복합미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배치마다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입니다.
- 향: 달콤한 토피와 캐러멜, 오렌지 마멀레이드 같은 과일 향과 함께 캠벨타운 특유의 짭짤한 바다 내음(Brine)과 은은한 피트 스모크가 어우러집니다.
- 맛: 입안을 꽉 채우는 기름지고(Oily) 부드러운 질감이 인상적입니다. 말린 과일, 바닐라, 밀크 초콜릿의 달콤함과 함께 후추 같은 스파이시함, 그리고 짭짤한 맛이 복합적으로 펼쳐집니다.
- 여운: 길고 따뜻한 피니시가 특징이며, 스모키함과 오크의 풍미, 약간의 소금기가 입안에 오래도록 남습니다.
왜 '스뱅 대란'일까? 가격과 구매 팁
스프링뱅크의 인기는 전통을 고수하는 소량 생산 원칙에서 비롯됩니다. 대량 생산을 통한 이윤 추구보다 품질 유지를 우선하기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스뱅 대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화려한 마케팅 없이 오직 품질로만 승부하는 진정성이 오히려 위스키 팬들을 열광시키는 요인입니다.
이러한 인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며 가격 또한 매우 높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국내 주류샵이나 바에서는 배치에 따라 30만원대 후반에서 70만원 이상을 호가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애호가들이 일본이나 대만 여행 시 현지 리쿼샵에서 구매하거나, 국내 전문 몰트 바에서 잔으로 경험하는 것을 대안으로 삼고 있습니다.
결론: 왜 스프링뱅크를 경험해야 하는가
스프링뱅크 12년 캐스크 스트렝스는 단순히 맛있는 위스키를 넘어, 사라져가는 전통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장인정신의 결정체입니다. 한 잔의 위스키에 담긴 캠벨타운의 역사와 미첼 가문의 고집, 그리고 복합적인 맛의 향연은 다른 어떤 위스키도 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살아있는 전설을 꼭 한번 만나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