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위스키의 세계적인 부흥을 이끈 산토리(Suntory)의 대표 브랜드 '히비키(響)'. 그 이름은 '조화' 또는 '공명'을 의미하며, 이름 그대로 다양한 원액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완벽한 밸런스로 명성이 높습니다. 수많은 히비키 라인업 중에서도 '블렌더스 초이스(Blender's Choice)'는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히비키 블렌더스 초이스의 역사적 배경부터 특징, 맛과 향, 그리고 시장에서의 가치까지 심도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히비키 위스키의 탄생: 조화의 미학
히비키 위스키는 산토리 창립 9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89년에 탄생했습니다. 당시 2대 마스터 블렌더였던 사지 케이조(Keizo Saji)는 일본의 자연과 장인정신을 반영한 정교하고 깊이 있는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수석 블렌더 이나토미 코이치(Koichi Inatomi)와 함께 산토리가 보유한 100만 개 이상의 캐스크에서 원액을 샘플링했습니다. 그 결과, 야마자키(Yamazaki), 하쿠슈(Hakushu), 치타(Chita) 증류소에서 생산된 30가지 이상의 몰트 및 그레인 위스키 원액을 블렌딩하여 비로소 '히비키'가 완성되었습니다. 산토리 글로벌 스피릿(Suntory Global Spirits)에 따르면, 히비키는 일본인의 섬세한 미각에 맞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복합미와 깊이를 지닌 위스키를 목표로 만들어졌습니다.
히비키 라인업: 시대의 흐름과 변화
히비키는 시대의 요구와 원액 수급 상황에 따라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여 왔습니다. 특히 일본 위스키의 세계적인 인기 급증은 원액 부족 현상을 초래했고, 이는 라인업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단종된 명작들: 히비키 12년과 17년
한때 히비키의 대표 제품이었던 '히비키 12년'과 '히비키 17년'은 현재 단종되어 구하기 매우 어려운 위스키가 되었습니다. 특히 '히비키 17년'은 특유의 부드러움과 복합적인 풍미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장기 숙성 원액 부족으로 인해 2018년 단종 수순을 밟았습니다. WAmazing Discover의 분석에 따르면, 폭발적인 수요를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내린 불가피한 결정이었습니다. 이들의 단종은 많은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현재의 주역들: 재패니즈 하모니와 블렌더스 초이스
숙성 연수 표기 제품(Age Statement)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산토리는 숙성 연수 미표기(No Age Statement, NAS) 제품들을 선보였습니다. '히비키 재패니즈 하모니(Japanese Harmony)'는 그 시작을 알린 제품으로, 숙성 연수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원액을 블렌딩하여 히비키 특유의 조화로움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등장한 것이 바로 '히비키 블렌더스 초이스'입니다. 이 두 제품은 현재 히비키 라인업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히비키 블렌더스 초이스 집중 분석
히비키 블렌더스 초이스는 단순히 '17년'의 대체품이 아닌, 그 자체로 독창적인 개성을 지닌 위스키입니다.
탄생 배경: 17년의 공백을 메우다
블렌더스 초이스는 2018년 9월, '히비키 17년'의 단종 소식과 함께 일본 내수 시장, 특히 레스토랑과 바를 대상으로 처음 출시되었습니다. Whisky Analysis의 리뷰에 따르면, 이 제품은 17년의 빈자리를 채우면서도 새로운 프로필을 제시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습니다. 비록 NAS 제품이지만, 평균 숙성 연수가 약 15년에 달하는 다양한 원액(12년부터 30년 이상까지)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출시 초기부터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특징: 와인 캐스크의 섬세한 터치
블렌더스 초이스의 가장 큰 특징은 와인 캐스크에서 후숙한 원액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기존 히비키 라인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시도로, 위스키에 섬세하고 복합적인 풍미를 더해줍니다. Flaviar의 설명에 따르면, 이 와인 캐스크의 영향으로 잘 익은 붉은 과일의 향과 부드러우면서도 균형 잡힌 맛의 프로필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블렌더스 초이스가 단순한 대체품이 아니라, 산토리 블렌더들의 창의성과 기술력이 집약된 새로운 작품임을 보여줍니다.
테이스팅 노트: 맛과 향의 교향곡
여러 위스키 전문가들의 테이스팅 노트를 종합하면 블렌더스 초이스의 맛과 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 향 (Nose): 잘 익은 라즈베리, 백도, 파인애플과 같은 과일 향이 풍부하게 피어오릅니다. 그 뒤를 이어 바닐라 푸딩, 크렘 브륄레, 토피 같은 달콤한 향과 함께 드라이한 오크 향이 복합미를 더합니다.
- 맛 (Palate): 입안에서는 꿀과 같은 달콤함과 함께 살구, 오렌지 껍질의 상큼함이 느껴집니다. 와인 캐스크의 영향으로 달콤하면서도 약간의 산미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전체적으로 매우 부드럽고 가벼운 질감을 자랑합니다.
- 여운 (Finish): 피니시는 비교적 짧지만 깔끔합니다. 달콤한 캐러멜과 함께 약간의 스파이스, 그리고 쌉쌀한 여운이 기분 좋게 마무리됩니다.
"블렌더스 초이스는 히비키 17년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개성을 지닌 위스키입니다. 처음에는 낯설 수 있지만, 마실수록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 Selfbuilt's Whisky Analysis
가격 및 구매 정보
히비키 블렌더스 초이스는 출시 초기 업소용으로 약 10,000엔에 공급되었으나, 인기가 높아지면서 소매 시장에 풀리기 시작했고 가격은 급등했습니다. 현재 일본 현지에서도 정가(약 16,500엔)에 구하기는 쉽지 않으며, 온라인이나 리셀 시장에서는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2025년 7월 기준, 해외 시장에서는 평균적으로 250~350달러 선에서 판매되고 있어 프리미엄 위스키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국내에서는 주류 전문점이나 면세점에서 간혹 찾아볼 수 있지만, 재고가 불안정하고 가격 변동이 큰 편입니다.
결론: 히비키 블렌더스 초이스는 구매할 가치가 있는가?
히비키 블렌더스 초이스는 '히비키 17년'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는 아쉬움을 줄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 매우 잘 만들어진 훌륭한 위스키입니다. 와인 캐스크 숙성 원액이 주는 독특한 과일 풍미와 히비키 특유의 부드러움, 그리고 완벽한 밸런스는 위스키 초보자부터 애호가까지 모두를 만족시킬 만합니다.
다만 높은 가격은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만약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기회가 생긴다면, 히비키라는 브랜드의 가치와 블렌더들의 정수가 담긴 맛을 경험해볼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17년의 대체품'을 찾는다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히비키 블렌더스 초이스는 과거의 명성에 기댄 제품이 아닌, 현재의 히비키를 대표하는 새로운 '조화'를 보여주는 위스키이기 때문입니다.